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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00개비 '골초' 화가, 호크니! 파리 전시 포스터 '퇴짜' 맞은 사연

기사입력 2025-04-11 10:59
 올 상반기 전 세계 미술계를 뜨겁게 달구는 단 하나의 전시를 꼽으라면 단연 ‘데이비드 호크니 25’다. 지난 4월 9일, 프랑스 파리 루이비통재단미술관에서 화려하게 막을 올린 이 전시는 20세기와 21세기를 대표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이자,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70년 예술 여정을 한눈에 조망하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11개의 방에 걸쳐 무려 400여 점의 작품이 웅장하게 펼쳐지는 이번 전시는, 1955년 초기 작품부터 2025년 올해의 신작까지 망라하며 호크니의 다채로운 예술 세계를 보여준다. 회화, 드로잉은 물론, 무대 세트 디자인과 혁신적인 디지털 회화까지 아우르는 이번 전시는, 역대 호크니 전시 중에서도 단연 '사상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2년이 넘는 철저한 준비 기간을 거쳐 탄생한 만큼, 그 완성도와 깊이 또한 남다르다는 평가다.

 

단순히 숫자만으로 화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건축계의 거장,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파리 불로뉴 숲 속의 루이비통재단미술관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이곳에서 지금까지 열린 수많은 전시 중에서도 이번 호크니 전시는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며, 공간 자체가 호크니의 예술 세계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게리 역시 "호크니의 그림이 건축물을 압도할 것"이라며 전시회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미술 전시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의 수장, '미다스의 손'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의 오랜 염원이 현실로 이루어진 특별한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아르노 회장은 호크니의 초기 작품부터 눈여겨보며 열정적으로 수집해온 자타공인 '호크니 덕후'다. 이번 전시를 위해 아르노 회장은 자신의 컬렉션은 물론, 전 세계 미술관과 개인 소장가들에게 삼고초려를 마다하지 않으며 귀한 작품들을 빌려왔다. 호크니 역시 전시 구성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아낌없는 조언을 건넸다고 한다. 거장의 예술혼과 재벌 총수의 컬렉터 본능이 만나 탄생한 역대급 콜라보인 셈이다.

 

특히 호크니가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뒤 그린 초창기 작품인 '캘리포니아 드림' 시리즈는 이번 전시를 통해 무려 40년 만에 세상에 공개된다. 호크니는 최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작년만 해도 내가 여기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며 감격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80대 후반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감행하며 예술혼을 불태우는 그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과 영감을 선사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화려한 전시 개막을 앞두고 데이비드 호크니가 '단단히 뿔이 난'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프랑스 정부가 호크니 전시 포스터를 파리 지하철에 걸지 못하도록 금지한 것이다. 호크니는 지난 4월 2일, 영국 인디펜던트와의 인터뷰에서 "이것은 완전한 광기"라며 파리 교통당국의 결정에 대한 불만과 아쉬움을 강하게 토로했다.

 


문제의 포스터는 호크니가 자신의 작품 '연극 속의 연극과 담배를 피우는 나(Play within a Play and Me with a Cigarette)'를 배경으로 촬영한 사진이다. 작품 속 자신과 똑같은 옷을 입고, 그림을 무릎에 얹은 채 담배를 들고 있는 모습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자유로운 예술가'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는 "예술은 항상 표현의 자유로 가는 길에 있어야 하는데, 내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그린 작품은 괜찮고 사진은 안 된다는 논리는 완전한 미친 짓"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호크니의 흡연 습관은 워낙 유명하다. 하루에 100개비의 담배와 시가를 피우는 것으로 알려진 그는 1954년부터 지금까지 (폐에 문제가 생긴 이후에도) 단 한 번도 금연한 적이 없다. 그는 "담배는 자유의 상징이자 우리 사회 창의력의 원천"이라고 주장하며 여러 기자간담회와 전시 오프닝 때도 시가와 담배를 번갈아 피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2012년 런던 로열아카데미에서 열린 개인전 'A Bigger Picture'를 준비하며 담배를 피운 일화도 유명하다. 일부에서는 그의 흡연을 비판했지만, 그는 "나는 항상 이렇게 작업해왔다"며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였다. 2007년 영국 정부가 공공장소 흡연을 법으로 금지했을 때는 'Stop bosiness soon(갑질을 멈춰라)'이라는 배지를 만들어 뿌리기도 했다. 그의 사진 자료를 살펴보면, 담배가 없는 사진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울 정도다.

 

물론 호크니의 포스터가 파리 지하철에 걸리지 못하게 된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오히려 이번 '담배 논란'이 전시를 더욱 뜨겁게 달구는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노이즈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셈이다. 전시 큐레이터인 노먼 로젠탈 경은 격앙된 어조로 "광기가 지배한다! 한 시대를 풍미한 거장의 전시 포스터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검열을 받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라며 "파리는 자유와 혁명의 도시가 아니었던가?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태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라고 비판했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예술 세계를 총망라하는 이번 전시는 오는 8월 31일까지 파리 루이비통재단미술관에서 계속된다. 자유로운 영혼과 끊임없는 혁신으로 전 세계 미술계를 매료시킨 데이비드 호크니의 예술 세계를 직접 경험해보는 것은 어떨까.